제1차 왕자의난
1398년 8월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왕자간의 싸움이다.
배경 및 원인
1.사병통수권 해체 추진(정도전주도, 진법훈련강화),방원은 공신에서 제외됨.
2.정도전은 신권주의, 이방원은 왕권주의 표방
3.이성계아들 8명(신의왕후한씨소생6명, 신덕왕후강씨소생 2명), 둘째정종,
넷째방간, 다섯째방원, 방번, 방석
4.신덕왕후 강씨는 방번을 세자로, 배극렴 조준은 방원을(태조는 방석 세자책봉)
5.위와 같은 문제로 방원과 정도전은 심한 대립상태
6.신덕왕후 강씨 사망(1396년)
과정
정도전은 태조의 병세가 위독하다고 왕자들을 궁중으로 불러 단번에 신의왕후 한씨 소생 왕자를 살육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트집을 잡아 이방원의 사병을 동원헤 반대파를 제거함, 이숙번사병을 동원해서 정도전, 방석, 방번을 죽인후 이방원 일당이 실권을 장악, 이방원을 세자로 책봉하려 했으나 방원이 사양하여 둘째 방과를 세자책봉(정치실권은 방원일당).
결과
정종이 즉위하자 이방원은 공신이됨, 이방원은 제이차왕자의난을 성공으로 이끌고 왕위에 오름
제이차왕자의난
1400년 종종2년 이성계의 넷째 방간은 다섯째 방원에 대하여 시기심과 불만을 가짐. 지중추부사 박포는 제일차왕자의난때 정도전이 방원을 제거하려 한다고 밀고하는등 공이 많았으나 일등공신에 오르지 못해 불평하다가 충청도로 귀양.
방간이 방원에 대해 불평하자 방간의 거병을 선동했다. 박포는 방원이 방간을 죽이려한다고 거짓 밀고하였고 방간은 이 말을 듣고 곧 사병을 동원하였다. 방원은 사병을 동원하여 방간과 박포를 체포함(방간은 유배, 박포는 사형), 방원의 왕위계승을 촉진하는 결과 초래.
1400년 2월 방원을 세제로 책봉후 11월 태종이 즉위함.
'해설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한산성 [南漢山城] (0) | 2013.06.12 |
---|---|
북한산성 (0) | 2013.04.16 |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여사 (0) | 2012.12.20 |
전쟁역사실 (0) | 2012.06.08 |
조선 시대 궁궐의 역사 (0) | 2012.04.25 |